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6. 6世 〉52. <부정공>사문(斯文)配 숙부인청산정씨구비문(淑夫人靑山鄭氏舊碑文)
1. 문헌 목록 〉6. 6世 〉54. <광양공>통정대부행천안군수공휘개보묘갈명通政大夫諱介甫墓碣銘(並書)
1. 문헌 목록 > 6. 6世 >  
53.<부정공>사문(斯文)配 숙부인청산정씨묘갈명(淑夫人靑山鄭氏墓碣銘)
(부정공후)6世사문(斯文)配 숙부인청산정씨묘갈명(淑夫人靑山鄭氏墓碣銘) 夫人姓鄭氏系出靑山訓練參軍諱尚周爲考妣三司左尹金考先女生夫人於建文戊寅二月一日生有異質貞淑柔婉自幼承襲詩禮内則列女傳孝經等書無不講通早有女士風及笄歸于左軍司正 贈吏曹參議趙公斯文之配其先出玉川自麗至本朝爲東方世胄曰光祿大夫門下侍中玉川府院君忠獻公諱元吉曰中顯大夫典農寺副正虔谷先生諱瑜即司正公祖與考也夫人孝事舅姑一遵副正公遺法而無違又能知大義麗運既訖虔谷公不就我朝徵命入杜門洞守罔僕之義後南下筮避於淳昌之乾谷順天之謙川司正公耕稼爲業而夫人委曲承佐爲之代幹生長富貴綺紈之餘無幾微見於色夫黨稱之尊舅捐世極力辦具卒得就事人皆嘖嘖稱善年及四十遭夫司正喪謹於晝哭之儀情禮咸備育諸孤雖愛甚然敎訓有法期望遠大每値司正諱日溉濯烹飪裁割盛齋必要蠲潔至老不替以天年沒于癸卯七月十一日享年八十六葬于順天雙岩面白也山坐艮原司正公墓在全州馬近大尾洞世遠失傳不得合毳也生四男三女男智山僉中樞壽職嘉善篤於友于築室同居扁以相好次智崑縣監次智崙察訪次智崗司果贈吏參女錄事德山李楷錄事崔尚仁縣監陳汝達智山娶豊山君沈寘女生一女適清川君韓懼再娶慶州金時焄女生二男漢孫貴孫縣監智崑娶參判南原梁敬走女生三男一女男穆郡守次和司直次稹女適進士彦陽金召奭智崙娶晋州河剛莊公漢女生一男穩摟兩試司馬參奉歷奉事直長智崗娶知郡事晋州姜一遇女生二男三女男珣縣監歷通判次琛翰林歷銓郎成均館大司成慶州府尹以子淳原尉貴後 贈吏參女適進士朔寧崔自豪兵使寶城宣胤宗都正李成禧曾玄以下煩不記夫人生於賢門擩擩染父母之敎爲婦爲妻爲母皆有成法自中年孀居四十餘年失志成孤勉持門戶孫曾森立競爽坐見婚嫁厥成福履之盛世固無比玉川趙氏自麗至本朝溯本窮源簪笏盈庭名德相望或有尚翁主而間出儒賢至若壬丙之役有捐生報主辛壬之禍扶正斥邪其績偉矣而梱範尤焯焯如此抑家規之浸漬有素然也夫人之藏久有貞瑕顯刻而年久剝落諸後孫合謀伐石改竪使人走千里請余銘之緬焉疇昔與吾家有世講之誼不辭而叙次如右繼以銘曰 猗歟夫人壺儀賢門四德咸備有本有源採彼沼沚蘋藻蠲潔食饗式饗誠敬自律是夫是婦如璵如瑶長世滋後其報不諼睾如之邱揭德長存 驪興 閔丙承 撰 丹雲 吏參 (부정공후)6世사문(斯文)配 숙부인청산정씨묘갈명(淑夫人靑山鄭氏墓碣銘) 부인의 성은 정씨(鄭氏)요 관향은 청산(靑山)이며 훈련참군 휘 상주(尚周)가 선고이고 비는 삼사좌윤 김효선(金考先)의 따님이다. 부인은 태조(太祖) 七년 무인(一三九八) 년 二월 一일 출생하였는데 나면서부터 다른 기질이 있어 정숙 유완하고 어려서부터 가훈을 이어받아 시예, 내칙, 열려전, 효경 등의 글을 모두 배워 달통하니 일찍 여사풍이 있었다. 성혼하여 좌군사정 증이조참의 조공 사문(斯文)의 배로 출가하니, 그 선대는 순창인이요. 고려조로부터 조선에 이르러 동방의 거성이 되었으니, 광록대부 문하시중 옥천부원군 충헌공 휘 원길(元吉)과 중현대부 전농시 부정 건곡선생 휘 유(瑜)는 곧 사정공의 조와 고이다. 부인이 효도로 시부모를 섬기고 한결같이 부정공이 끼친 법을 어김없이 지키며 또 능히 대의를 알았다. 고려가 망하자 건곡공이 조선의 부른 명령을 받지 않고 두문동에 들어가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뒤에 남으로 내려가 순창 건곡과 순천 겸천에 숨으니 사정공이 농사로 생업을 삼고 부인은 극진하게 보좌하여 부귀한 가정에서 생장한 부인으로서 조금도 어려운 빛이 없으니 시가에서 칭찬하였다. 시부가 세상을 버림에 힘을 다하여 상구를 준비하여 마침내 장례를 마치니 사람이 다 큰소리로 칭송하였다. 四十세에 사정공 상사를 당하여 주곡(晝哭)의 의절을 지켜 정과 예를 다 갖추었으며, 여러 고아를 기르면서는 비록 깊이 사랑하였으나 법도 있게 가르쳐 원대하게 되기를 바랐다. 매양 사정공 휘일을 당하면 세척, 숙정, 재계를 늙도록 폐하지 않고 몸소 행하였다. 천년(天年)으로써 계묘(一四八三)년 七월 十一일에 향년 八十六세로 별세하니 순천 쌍암면 백야산 간좌언덕에 장사하였다. 사정공의 묘소는 전주(全州) 마근(馬近) 대미(大尾)에 있었는데 오래되어 실전하였으므로 합장하지 못하였다. 아들 지산(智山)은 첨중추로 수직 가선인데 우애 독실하여 정자를 지어 동거하며 상호정이라 현판하였고 차자 지곤(智崑)은 현감이요, 三남 지륜(智崙)은 찰방이며, 四남은 지강(智崗)은 사과로 증 참판이요 딸은 녹사(錄事) 덕산(德山) 이해(李楷)와 녹사 최상인(崔尚仁), 현감 진여달(陳汝達)의 처이다. 손자 한손(漢孫), 귀손(貴孫)은 큰아들 소생이요, 목(穆) 화(和), 진(稹)은 둘째아들 소생이며, 온(穩)은 양시에 합격하여 사마참봉으로 봉사 직장을 지냈는데 셋째 아들 소생이요, 순(珣)은 현감으로 통판을 지냈으며 침(琛)은 한림으로 전랑을 지내고 성균관 대사성 경주 부윤을 역임하고 아들 순원 위의정(淳原尉義貞)의 귀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으니 넷째 아들 소생이다. 부인이 현철한 가문에 생장하여 부모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부도에 다 성법이 있고, 중년으로부터 홀로 四十년을 살며 마음을 가다듬고 아들을 성장시며 문호를 힘써 유지하고 손자 증손이 빽빽하게 들어서 서로 다투어 빛나고 살아서 혼인 출가한 것을 보았으니 그 이룬 복록의 성대함이 세상에 진실로 비할 데 없다. 순창 조씨는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 근원을 거슬러 보면 관작이 뜰에 가득하고 명덕을 서로 우러러보아 혹 옹주(翁主)를 맞아들이며 간간히 어진 사람이 나서 임진(壬辰) 병자(丙子)의 난에는 생명을 버려 왕은에 보답한 자 있었고, 신임사화(辛壬士禍)에는 바른 것을 붙잡고 간사한 것을 물리친 그 공적이 거룩하다. 거기다 규범(閨範)이 더욱 이와 같이 빛나고 빛나니 집안 법도의 유래가 그 근원이 깊다 하겠다. 부인의 유택에 전부터 곧은 돌에 나타난 각자가 있더니 세대가 오래되어 박락되었으므로 모든 후손이 합의하여 돌을 깎아 고쳐 세우고 천리 길에 사람을 보내 나에게 갈명을 청하니 옛적에 내집과 세의가 있음으로 사절 아니 하고 이상과 같이 서술하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명한다. 성대하다 부인이여 猗歟夫人 어진 집안의 법도로다. 壺儀賢門 네 가지 덕을 다 갖추었으니 四德咸備 근본이 있고 근원이 있도다. 有本有源 저 못 가에서 캐니 採彼沼沚 마름이 마름이 밝고 조촐하다. 蘋藻蠲潔 먹이고 잔치하며 흠향할 제 食饗式饗 정성과 공경으로 몸을 다스렸네. 誠敬自律 이 부부가 是夫是婦 보옥 같도다. 如璵如璠 오래도록 착한 후손이 번성하니 長世滋後 그 갚음을 잃지 아니하였다. 其報不諼 윤택한 언덕에 표창한 덕이 睾如之邱 길이 보존하리. 揭德長存 여흥(驪興) 민병승(閔丙承) 지음
 
1. 문헌 목록 〉6. 6世 〉52. <부정공>사문(斯文)配 숙부인청산정씨구비문(淑夫人靑山鄭氏舊碑文)
1. 문헌 목록 〉6. 6世 〉54. <광양공>통정대부행천안군수공휘개보묘갈명通政大夫諱介甫墓碣銘(並書)